강연회에 참석을 했는데 강연 참석자들에게 무료로 책을 한 권씩 나눠주고 있었다. 두 권의 책 중 한 권을 고를 수 있었는데 그중 한 권의 책이 김경일 교수님이 쓴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생활>이었다. 유투브에서 김경일 교수님의 강의를 몇 번 재미있게 보았던 터라 고민하지 않고 바로 교수님이 쓴 책을 골랐다.
이 책은 교수님이 단지 뇌피셜로 쓴 책이 아니다. 이 책에서 교수님은 본인이 공부하신 인지심리학을 토대로 이론적 근거 하나하나를 확인하고 그동안 심리학자들이 실험하고 연구한 내용을 곁들여 인간심리 내면의 모습을 파헤치고 또 인간심리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인간관계에서의 다양한 갈등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지혜를 주고 있다.
이 책은 옴니버스 형식처럼 되어 있어 나는 매일 저녁 식사 후에 마치 후식 먹듯이 한 챕터씩 읽었다.
책의 2강에는 예민한 사람vs.둔감한 사람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내용과 관련하여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가 언급되는데 접근 동기는 좋은 것을 추구하고 싶은 욕구, 내가 하고 싶고 보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을 누리려는 욕구를 말하고, 회피 동기란 싫어하는 것을 피하려는 욕구, 내가 싫어하는 것은 안 보고 안 겪고 싶은 욕구를 말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과 관련하여 ‘중대재해처벌법’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이 법이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데 접근 동기, 회피 동기와 어느 정도 연관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뉘어지는데 다음 내용은 중대재해법과 관련하여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의 자료를 인용한 것이다.
‘중대산업재해’란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제1호에 따른 산업재해 중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결과를 야기한 재해를 말한다. 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다.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 ‘중대시민재해’란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결과를 야기한 재해를 말한다. 다만,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하는 재해는 제외한다. 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나.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 다.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 <출처: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자료 인용> |
사람의 생명이란 소중한 것이기에 인명의 손상을 막자는 법의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이 법을 적용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왜냐하면 사업주가 사업체를 운영하다 보면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불가항력적으로 인명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그것을 잘못하면 아주 혼쭐을 내주겠다며 겁박하는 식으로 문제해결에 접근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설령,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 하고, 주의조치 하는 일을 아주 태만이 해서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해결방안이 잘못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겁박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해당하는 사고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은 사업장이나 공중이용시설에 대해 매년 일정 정도의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어떨까? 그렇게 한다면 경제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인명피해까지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되지는 않을까?
겁박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주는 확실한 사례가 있다. 바로 세계 최대 에너지 회사였다가 파산한 엔론의 사례다. 다음은 엔젤라 더크워스가 쓴 책 <그릿>(옮긴이 김미정)의 내용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엔론은 한때 세계 최대 에너지 회사였으며 《포천》에 의해 6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엔론이 파산 신청을 하면서 대대적이고 체계적인 회계부정을 통해 이례적인 수익을 낸 것처럼 속여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엔론의 붕괴로 부정행위에 관여한 적도 없는 직원 수천 명이 일자리와 건강보험, 퇴직연금을 잃었다. 당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이었다. 엔론이 도산한 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엔론-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을 관통하는 주장도 동일하다. 엔론이 승승장구하던 시절 최고경영자는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의 자신만만하고 명석한 제프 스킬링이었다. 스킬링은 매년 직원의 등급을 매기고 하위 15퍼센트를 바로 해고하는 엔론의 인사고과제도를 개발했다. 즉 절대적 기준으로 얼마나 성과를 냈건 상관없이 다른 직원보다 상대적으로 성과가 떨어지는 직원을 해고시켰다. 그래서 이 인사제도는 엔론 내에서 ‘등급 평가 후 해고’로 불렸다. 스킬링은 이를 맥킨지가 수립한 중요한 전략의 하나로 여겼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 전략이 속임수를 보상해주고 성실성을 막는 근무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
어떤가? 등급 평가 후 하위 15퍼센트를 해고한다고 하니 죽어라 일했는데도 하위 15퍼센트에 들 게 명확해 보이면 어떤 속임수를 써서라도 하위 15퍼센트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을 받지 않겠는가? 속임수를 썼더니 어떻게 되는가? 해고를 피하게 되는 보상이 따른다. 하위 15퍼센트에만 들지 않으면 밥줄이 끊기지 않으니 성실히 일해서 성과를 내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잔머리 굴려서 하위 15퍼센트에서만 벗어나려는 조직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엔론의 파산과 관련하여 베스트셀러 작가 글래드웰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하위 15퍼센트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유능하고 똑똑하다는 인상을 풍기는 것이 유리하기에 겉으로는 잘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깊은 불안에 시달리는 직원들을 양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접근 동기보다 회피 동기를 이용해서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법이라고 생각되는데 발상을 바꾸어 접근 동기를 이용하는 쪽으로 법과 제도의 방향을 전환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직장생활을 하며 또는 인간관계 속에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인간으로 인해 도대체 이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 인간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 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마치 김칫국을 마시지 않고 고구마를 백 개 먹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이 책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한 번에 쭉 읽기보다는 틈날 때마다 편한 마음으로 간식 먹듯 한 챕터씩 읽는 방식을 추천한다. 아마 한 챕터씩 읽을 때마다 입에서 ‘아하 그렇구나,’ ‘그것 참 흥미로운데’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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